대구 달서구지명유래6 소개
안녕하세요.
대구 룸싸롱입니다.
오늘은 대구 달서구의 이곡동, 장기동, 죽전동의 지명유래에 대해 한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구 달서구지명유래6
이곡동(梨谷洞)
이곡동은 와룡산 밑자락에 있는 마을(성서 동서‧서한아파트 북편)에 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배골[梨谷] 또는 배실이라고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이곡동으로 하였다.
- 갈산동(葛山洞, 갈미)
갈산동은 흔히 갈미라고 한다. 마을 뒷산에 칡나무가 많아 칠뫼가 갈(葛)뫼로, 다시 갈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갈나무(떡갈나무)가 많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 선원마을
김해 허씨(金海 許氏) 허재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한 이후 허씨(許氏) 집성촌(集姓村)이 이루어졌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이곳 출신인 상무헌 허득량(尙武奸 許得良)의 스승이었던 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의
호를 따서 선원마을이라 했다.
대구 달서구지명유래6 장기동(長基洞)
400여 년 전, 구씨(具氏)와 장씨(張氏)가 마을을 개척하여 구씨, 장씨의 터라하여 구장터라 불렀다고 하며, 그 후 100여 년 뒤 구씨는 대부분 떠나고 장씨가 마을을 이끌어 왔다고 하여 구자(具字)가 빠지고
장씨 터라는 뜻의 장기(張基)로 불려졌다.
- 장동(壯洞, 장골)
임진왜란 당시 죄 없는 서민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는데, 격분한 허옥이란 사람이 큰 옥(玉) 자물쇠를
힘껏 내려치니, 통로 바닥 통나무가 갈라졌다고 한다. 이 사람이 1620년경부터 이 마을에 살게 되자
씩씩한 장정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장골[壯谷]’이라 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죽전동(竹田洞)
죽전동에는 예전 50가구 정도의 주민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부업으로
대나무 갈퀴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이들이 만든 대나무 갈퀴는 서문시장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이렇게 대나무 갈퀴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 하여 ‘죽전(竹田)’이라 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1970년 만해도 이 마을에 큰 대밭이 있었고, 그 옛날에도
마을 안 빈 집터에 대나무밭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출처 달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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