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지명유래3

대구 달서구지명유래3 소개

안녕하세요.
대구 룸싸롱입니다.

오늘은 대구 달서구의 본리동과 상인동의 지명 유래에 대해 한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구 달서구지명유래3

본리동(本里洞)

『대구읍지』에 의하면, 원래 대구부 감물천면(甘勿川面) 지역으로, 1914년 감천리(甘川里)
작촌동(鵲村洞)을 합쳐 본리동이라 하고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시켰다.
이후 1981년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1987년 본리동 일부를 분리하여 본동을 신설 하고,
월성동 일부를 본리동에 포함시켰다. 1988년 달서구가 신설되어 달서구로 편입되었다.

  • 작촌(鵲村)

작촌의 지명은 까치와 관련이 있다. 마을 뒤 언덕바지에 까치들이 떼를 지어 살면서 때때로
인가에까지 내려와서 짚뒤주나 뜸뒤주에 둥지를 틀고 살았는데, 이에 마을 뒤 언덕바지를
‘깐치말등’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까치마을인 ‘작촌’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 지루지(地漏地)

감물천면의 행정중심지는 가무내(현 달서구 본동)였고, 면 주민들이 리(里)에 내왕할 때
감물내 냇길이나 질등(지리등)을 거쳐서 지루지 마을 앞을 지나다녔다.
이에 사람들이 거쳐 지나가는 길목이라 하여 ‘질우지’이라 불리기 시작하여 명칭 자체가
연음화 되면서 ‘지루지’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 충적평야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주위가
비가 오면 몹시 질퍽해졌는데 길이 질퍽하다하여 ‘지루지’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또한 까치를 길한 새라하여 새의 옛말인 ‘우지’의 음을 따서 한자로 ‘宇地’라 쓰고 ‘길우지(吉宇地)’라
했는데, 연음되어 ‘지루지’라 불렸으며 ‘작촌(鵲村)’의 속명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인동(上仁洞)

상인동의 지명은 ‘우리못’이라고도 불리는 ‘상인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상인못이 있던 지역은 상인동, 하인못이 있던 지역은 하인동으로 불렸다는 지역민의 증언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도두뱅이 산 앞에 있던 하인못은 ‘신못’ 혹은 ‘신제’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 상원고등학교 자리이다. 지역의 ‘상인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상인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그 근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 달비골(달배골)

언제부터, 어떠한 연유로 ‘달비골’이라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달’이란 말은 ‘하늘의 달’이란
뜻과 함께 ‘산’이란 말이고, ‘비’는 ‘바위’란 뜻이니 이를 합치면 ‘산바위’ 혹은 ‘달 같이 생긴 바위’란
말이 된다.
이곳을 둘러싼 주변 지역의 지명 가운데 ‘월배(月背)’란 지명과 ‘월암(月岩)’이란 지명도 따지고 보면
모두 ‘달비’란 말의 이두식 표현이다. 이 지역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달비골’과 관련된 전설은
고려 태조 왕건 때까지 올라간다.
후백제 견훤과의 팔공산 동수대전에서 대패한 왕건이 이곳저곳을 거쳐 현재의 대덕산 임휴사
자리까지 와 잠시 쉬고 있을 때, 당시 마침 보름쯤이었던지 크고 둥근 달이 떠올라 앞을 바라보는
자신의 등 뒤를 비추어, 등 뒤에서 달이 비추는 골짜기라 하여 ‘달배[月背]골’이라 칭하였는데,
경상도식 호칭이 가미되어 ‘달비골’이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 계곡의 골이
너무 깊어 달이 뜨면 달빛이 계곡에 비춰진다 해서 ‘달비골’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달배[月背]골’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월배(月背)’로 변하여 현재의 ‘월배’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말에 의하면 개발되기 전 지금의 달비약수탕 근처에 큰 바위가 집단으로 많이 있었는데,
나무꾼들이 나무짐을 지고 이 바위 사잇길로 몸을 비틀면서 빠져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큰 바위돌이 이 골짜기의 특징으로 달배골의 달배는 큰돌바위의 고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 월촌(月村, 안마)

월촌은 달비 북쪽에 있던 마을로 조선 선조 때 의병장 월곡 우배선이 살았다. 정략장군 우전(禹奠)이
정도전 일파의 정치적 보복을 피하여 낙향하던 당시에 그들을 비추던 달이 유난히 밝게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월촌’이라 하였다. ‘안마’라고 불리기도 하며, 단양 우씨들이 많이 세거하고 있는
집성촌이다.

  • 임휴사(臨休寺)

고려 초기 921년 창건된, 대덕산 달비골 중턱에 있는 절이다. 927년 고려태조 왕건이 팔공산에서
견훤과의 격전 끝에 대패하여 반야월과 안일암을 거쳐 이곳에서 임시(臨時)로 쉬어갔다 하여 유래되었다.

출처 달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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